입출력

신영복 교수가 쓴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에는 인식과 실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식->인식->인식의 순환만으로는 그저 인식밖에 못하는 바보가 된다는 맥락의 글이었던 것 같다. 머리로 아는 것과 진짜 아는 것은 다르다. 사실 나는 안다는 것에 대하여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의 입력만으로 마치 가치있는 지식을 얻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마는 것 같다. 어떤 말에 익숙해진다는 것과 그 말이 나타내는 것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은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연구실은 일반적으로 봤을 때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아니, 그곳의 일상은 아주 협소하고 작은 진실을 추구하는 국소적인 현실이다. 방사선, 전자기장, 반입자, 가속기, 신치레이션 검출기, 매일매일 주고받는 대화속에 오고가는 어휘는 그리 인간적이라고 할 수 없다. 기계적인 말의 홍수에 귀를 묻고 있자면 따뜻하거나 차가운, 혹은 자극적인 말들에 갈증을 느끼게 된다. 인간적인 어휘라는 말이 적당한 표현인지는 의심이 들지만, 굳이 나타내자면 그렇다. 그런 말들이 그립다. 그래서 바람을 핀다. 하루키를 읽고 데카르트를 읽는다. 연애라는 개념이 진짜 프랑스 문학에서 나온건지 의심하면서 읽는다. 언젠가는 나도 가족을 먹어살리겠지하며 어울리지도 않는 재테크를 읽고, 그 보다 좀 더 고상한 욕구 때문에 토플러와 나쁜 사마리아인을 만난다. 포앵카레는 그냥 좋다.

이렇게 해서 내 지식은 생활에서 나오는 직관과 확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논리적인 판단력이 부족한 인간이 무분별하게 지식을 흡수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나다. 체계가 없고 난잡하다. 언젠가는 한 번 머릿속을 대청소 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미룬다. 정리하기 귀찮은건 기숙사방도 마음도 마찬가지다. 뇌세포 안에서 싸우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희미한 기억으로 왜곡된 위인들이다. 나는 방관자다. 내안에서 나는 벙어리가 된다.

배운 것을 실천할 용기도 없고 확신도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뭘 배웠는지 확인하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 이건 어디서 본 말인지, 나는 그것을 진실로 인정하는지, 생각하다보면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래서 펜을 잡는다. 무슨 주제를 어떻게 써야될지, 아무런 감도 없다. 그래서 아주 싼 수첩을 산다. 그렇게 정처없이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종이위에 옮겨놓고 나면 조금은 기분이 가라앉는다.

입력을 했으면 출력이 필요하다. 출력은 다시 입력을 필요로 한다. 입력한 것을 바르게 출력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소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소화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계속 분유만 먹인다고 장이 튼튼해질 것인가. 설사를 하더라도 조금씩 밥을 먹여야 한다. 언젠가는 진정한 의미의 실천을, 손가락이 아닌 팔과 다리로 하게 될 날을 간절히 바란다. 그런 경지를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아기다. 이제 갓 태어난 신생아로 눈조차 제대로 뜨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이나 빨아야 할 정신이 밥을 먹으려 욕심을 부리니 탈이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녕 그 단 밥이 설사나 토가 되어 고약한 냄새가 난다 할지라도, 표현의 의무를 느끼는 것은 거역할 수 없다. 장 안에서 썩는 것 보다는 내보내는 것이 낫겠지. 오늘도 그런 이유로 미완성인 나를 출력한다.

by 카오 | 2009/11/06 18:19 | 끄적임 | 트랙백 | 덧글(0)

소재

글 쓰는 법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 올 해 봄이 되어서일 것이다. 방안에서 뒹굴러다니던 박동규 교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가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첫 장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빠르진 않아도 술술 읽히는 느낌이었다. 전과목중에서 가장 싫은 몇 순위 안에 들어있었던 국어가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니, 무지에서 나오는 거부감은 백번 손해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낀 경험이었다.

성공학 책을 백번 읽어봐야 성공할 수 없는 것처럼, 책을 한 권 읽었다고 해서 글이 술술 나올리는 없었다. 그래도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에서 얻은 작은 교훈이 있었는데, 단순하고 알기쉽고 소박하게 쓰면 좋다는 것이었다. 이 세가지는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이라는 것과는 또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데, 박동규 교수의 글이 딱 그랬다. 단순 명료 소박이 한 데 잘 어우러지면, 감각적으로 '깨끗하다'라는 인상을 느끼지 않는가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오후 아홉시쯤 후배녀석한테 전화가 왔다. 나와 나이는 동갑이지만 입학이 일년 늦었다고 꼬박꼬박 선배취급을 해준다. 처음부터 그런대로 그런 관계가 어색하지도 않았던 것도 신기하지만, 선후배 관계이면서도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또 인간관계의 묘미가 아닌가 하는 걸 느끼게 해주는 친구다. 그와 내가 가끔 전화하는 이유, 한번 전화하면 이삼십분은 족히 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글쓰기'라는 공통의 화두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 내가 보기엔 우리 둘다 수준은 엇비슷하지만, 이런 대화상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참신한 자극이 아닌가.

몇마디 주고 받으니,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그의 입에서 푸념 비슷한 소리가 나온다.

"아 형, 요즘에 책도 읽고 글도 써야되는데 잘 못하겠어요."

"뭐 그리 조급할 필요있나."

"조급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습관화 시키고 싶거든요."

"그럼 아무거라도 써."

"뭔가 써야되는데 아무 생각이 안나네요. 연구실에서 스트레스 받는 것 때문에 집에 오면 다른 것만 해요."

"뭐하는데."

"텔레비젼을 보거나... 이것저것."

내가 아는 한 이 친구는 그리 나태한 친구가 아니다. 근데 통화할 때마다 꼭 푸념소리를 해댄다. 주로 감정기복 때문에 '진짜 하고 싶은' 독서와 글쓰기를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분명 빠릿빠릿한 비판이나 자극이 되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리라. 그러나 독설이 특기가 아닌 나는 넌지시 평범한 답을 내미는 수 밖에 없었다.

"그거 쓰면 되겠네. 나는 지금 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가."

by 카오 | 2009/10/19 23:41 | 트랙백 | 덧글(8)

유보

톨스토이의 인생론에서는 물레방아를 돌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그 원리에 관심을 가지는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그 청년의 행위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무가치한 것으로 논증이 끝났던 것 같다. 몇년전에 읽었기 때문에 가뭇가뭇 하지만, 청년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은 그의 무의미한 착각이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몇년간을 되돌이켜보면 내 모습이 바로 이 청년과 꼭 닮지 않았었나 싶다. 제대로 공부해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적도 없고, 항상  내가 지금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실제 행위와는 관계가 옅은 문제로 머리를 썪히고 있었던 것 같다. 3차원 구형좌표에서의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면서도 수소원자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회의를 지니며,  대부분이 아무런 의심도 하지않는 물리법칙의보편성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학부과정 4년동안 나는 한 번도 그 누구와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해 본 적이 없다. 물리학과 동기들도, 교수님들도,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통찰력있는 답변을 들은 적이 없다.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리학과나 화학과 생물학과가 아닌 문학부 에서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졸업전에 객기로 이수한 과학철학수업도, 그리 만족할 만한 답을 주지 못했다.

물리학과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다른 모든 활동이 그렇듯이 재능만큼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리학이 수학 다음으로 체계화된 정합성을 지닌 학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여기서 체계화 되어 있다는 것은, 첫째로 부분과 부분, 분야와 분야 사이에 끈끈한 상호관련성이 있으며, 둘째, 기초지식을 바탕으로해서 고급지식으로 넘어가는 단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턴역학을 좀 더 수학적으로 세련되게 기술한 것이 해석역학이고, 맥스웰의 단원자 기체모델을 먼저 배우고 본격적인 통계역학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전 단계를 바르게 이해하면, 처음부터 그 다음 단계를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용이하게 지식을 습득해 갈 수 있다. 여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뒤집어 말하자면 시간을 투자한 만큼 실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와서야 이렇게 말하지만 난 물리학과 학생으로서 그리 성실하지 못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야 전체에 대한 흐릿한 조감을 얻었을 뿐이다.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하나하나씩 밟으며 수행해야 했던 단계들을 무시하고 대뜸 전체상부터 얻으려고 했던 것이 치기어린 실수였던 것 같다. 전체에 대한 조감없이 하나하나만을 파는 것으로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물리의 학습에 있어서는 먼 앞이 보이지 않아도 당장 눈앞에 놓인 계단 하나를 올라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싶다.

한숨쉬는 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졌는데, 여튼 나는 위에 쓴 사항들을 실행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유보하면서 몇년 내내 생각했지만 결론을 얻지 못한 질문들, 내가 하는 것이 진정 과학일까. 정해진 커리큘럼 위에서 꼭두각시 처럼 배우고 따라하는 것이 과연 진정 학문을 하는 것일까. 이 방대한 학문의 바다에서 난 과연 소금기에 절지 않은 물고기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로 스스로를 괴롭혀 왔다. 가끔은 내게 이성이라는 것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미안하다. 공지로는 제대로 된 글을 쓴다고 해놓고서는 이런 허섭글을 남겨버리다니. 같은 고민이라도 진지하고 체계적이지 않은 고민은 그저 단어의 나열에 지나지 않을 터인데. 그래도 어쩌겠나. 글에 서두가 없는 것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질문을 지닌 나같은 범인이 지고 가야할 숙명이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당분간은 반복될 듯 하다.

by 카오 | 2009/10/16 21:02 | 생각 | 트랙백 | 덧글(0)

[양자역학] 파동함수의 해석

학회 포스터 만들어야 하는데 이 뭔 삽질.. 지식인에 쓰고보니 뭔가 좀 아까워서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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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캐스트 본문 => 양자론의 완성 슈뢰딩거 방정식

질문 : 같은 함수식을 보고 일부는 파동함수라 하고 또 다른 일부는 확률함수라고 주장했다면, 그 함수 자체의 형태는 같다는 건데 어떻게 해석의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

본문에서는 슈레딩거 방정식을 풀어 나온 해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파동함수, 확률함수로 다른 명칭을 부여한 것 같습니다. 지금의 대학에서는 양자역학을 가르칠 때 Ψ의 명칭은 파동함수로 하고, 해석은 보른의 해석을 채용하는 곳이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Ψ는 다른 명칭으로 상태함수라고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용어가 가장 현대의 해석에 알맞지 않나 싶습니다. 상태함수라는 말의 뜻은, Ψ가 측정가능한 물리량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어떤 계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본문에서도 나왔듯이 ε이라는 에너지를 가지는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나, 다르게 표현하면 입자가 가지는 위치와 운동량, 그리고 스핀을 지정하는 정보의 묶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똑같은 상태를 exp[i(kx-wt)]처럼 파동함수의 형태로 쓸 수도 있고 행렬로 쓸 수도 있습니다. 전자는 슈뢰딩거, 후자는 하이젠베르크가 채용한 형식인데, 두 형식은 수학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습니다.

위에도 썼듯이 상태함수 자체가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은 아닙니다. (슈뢰딩거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물리량이라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이차편미분 방정식이기 때문에, 해가 복소함수의 형태를 띄어서 더더욱 골치 아파지죠. 허수 i가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물체에 대응하는가? 라는 물음과 비슷합니다. 보른은 Ψ자체가 아니라, 절대값의 자승|Ψ|^2에 미소영역의 체적을 곱한 것이 그 영역에 입자가 존재할 확률이라고 정의합니다. 만약 어떤 입자가 존재한다면 전 우주공간 안에 존재할 확률은 1이되어야만 하겠죠. 그래서 |Ψ|^2를 전공간에서 적분한 값이 1이 되도록 Ψ에 적당한 상수를 곱한 것을 새 상태함수로 차용하는데,이것을 규격화라고 합니다.

위치나 운동량 같은 물리량은 그에 대응되는 연산자를 상태함수에 적용시켜서 얻습니다. 보통 고전역학에서 쓰는 문자 위에 ^를 써서 표현합니다. 운동량 p의 연산자는 p^와 같은 식으로 씁니다. (텍스트로는 표현하기 힘든데 p의 바로 위에 ^가 씌워졌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p^Ψ = pΨ, x^Ψ = xΨ 같은 식이지요. 이렇게해서 구한 pΨ, xΨ의 앞에 Ψ의 복소공역을 곱해 전구간에서 적분하면 p와 x를 구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의 연산자는 해밀터니안H로 본문에 나온 슈뢰딩거 방정식의 좌변과 동일한구조를 취하고 있지요. p^, x^의 경우와 같은 방식으로 상태함수에 해밀터니안을 적용시키면 에너지를 구할 수 있습니다. 즉, HΨ=EΨ가 됩니다. ( H=(p^)*(p^)/2m - V )

|Ψ|^2를 확률밀도함수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Ψ와는 다르지요. Ψ는 입자의 물리적 상태를 나타내는 상태함수 또는 파동함수로 부르고, |Ψ|^2는 존재확률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대표적인 해석입니다. 슈뢰딩거는 이 해석을 거부했던 것이고, Ψ자체가 특정 물리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되네요.

by 카오 | 2009/10/04 14:53 | 트랙백 | 덧글(2)

How to read a book 일본어 버전으로 재독중.


0.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적극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독서를 수동적인 행위로 생각하는 것만큼 잘못 된 것은 없다. 단지 눈에 보이는 문자의 뜻만을 좇는 것은 큰 병폐를 초래한다. 언어는 본질을 가리키는 표지판이며, 그 표지판 앞에 계속 서있어도 목적지에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근래에 독서에 대해 적지 않은 회의를 느낀 것은 표지판만 바라보면서 자신이 정체되어 있는 이유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1. 인도의 한 성자는 모든 것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눈 앞의 사물을 단지 빤히 쳐다보고 있다고 해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물이나 현상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질문이라는 노력을 지불해야만 한다. 누군가 호기심을 신의 선물이라 부른 것은 이런 연유에서라고 생각해본다. 호기심은 질문을 이끌어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대상에 대한 관심 그 자체로 새로운 지식을 이끌어 내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지는 못하나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인하여 생계 이외의 것에 대한 관심이 메말라버렸다면, 의식적으로 질문하는 습관이 차갑게 식은 마음에 좋은 땔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by 카오 | 2009/06/12 20:23 | 생각 | 트랙백 | 덧글(1)

잡담

1. 블로그를 정기적으로 갱신한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계획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예전보다 취미활동에 투자하는 시간도 적어졌고, 필력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예전에 쓴 글일 수록 더 가치없게 느껴지는 일이 많다. 지금은 동기부여가 부족한 것일까?)

2. 원래 뭔가 제대로 해보는 일이 없어서 분류도 엉망진창이고 쓰는 글도 특별한 주제없이 횡설수설 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역시 그렇게 해서 글을 써봤자 만족감 같은 것은 거의 일지 않는다. 독서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도 자신의 성장에 결부되지 않으면. 아니면 일상의 잔잔한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던가.

3. 얼마전에 읽은 <카네기의 말하기 교실>에서 인용되었던 말인데, 인간은 구체적인 사물로 사고하지 추상적인 개념으로 사고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철학자가 듣는다면 충분히 반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이 크게 와닿았다. 정의, 사랑, 신념, 이런것들은 정말 멋지고 훌륭한 말들이지만,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이고 경험인 것이다. 책을 읽고 비판하는 것은 너무 쉽다. 행동은 수만배 어렵지.

4. 그런의미에서 자기만족이라는 것은 참 쉬운 것이다. 중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이상, 오바마도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아무리 큰 대의를 가지고 있더라도 소박한 면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인데. 현실에서의 작은 마찰도 엄청난 고통으로 확대해석하며 비장함으로 위장하는게 인간... 특히 내가 그렇다.

5. 먹고 싶은 건 없는데 배고프다. 저녁 뭐 먹지?

by 카오 | 2009/05/15 18:23 | 끄적임 | 트랙백 | 덧글(3)

네이버가 한 건 했네

이건 좀 감동입니다.

http://inside.naver.com/dna

by 카오 | 2009/04/30 21:12 | 메모 | 트랙백 | 덧글(2)

릴랙스 릴랙스 떴어요 그녀가

오늘은 Mark Vagins씨의 강의 세번째 시간이었다.

프리젠테이션 자료의 첫 화면에 쓰인 캐릭터를 어디서 많이 본 듯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고등학교 시절 무한반복 시청했었던 '떴다 그녀'의 토끼(도키)였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How to tell a good story. 좋은 이야기의 요소에 꼭 언어가 들어가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재료로 삼박자의 플래쉬를 활용한 것이다.

아,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그리움을 발견하게 될 때의 기쁨이란.

더 기뻤던 것은 이 짧은 애니매이션이 한국에 대해 드라이한 뉴스만 접해왔을 동경대 대학원 이학계연구과 학생들에게 상당히 좋은 반응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 굳게 닫혀져 있던 입술들 안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지난 편에서 묘사한 학생들의 태도와 대비해 보면 어느정도로 좋았는지 감이 올것이다.)

역시 가장 인간적인 것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인다.

나와 같은 세대라면, 삼박자란 프로젝트명을 기억 못할 수는 있어도  '떴다그녀'라는 플래쉬 애니매이션은 한 번쯤 관람한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움에 잠기면서, Vagins씨의 강의 내용을 같이 한 번 되집어 보면서, 어색해도 미워할 수 없는 예쁜 사랑이야기를 다시한번 즐겨보길 바란다.


- Key elements in storytelling
1. Introduction of main character(s) the audience cares about, can relate to, identify with. (고양이인 나비와 토끼인 도키)
2. Something happens which causes them to take action. 
(둘의 만남, 도키는 나비에게 첫눈에 반해버림)
3. The story's hero faces obstacles, challenges on journey. 
(종간 잡종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나비 도주)
4. Turning point, or climax of action. 
(도키의 끈질긴 구애로 나비 체념)
5. Conclusion - hero wins heroically of fails tragically. 
(사랑이 결실을 맺음)

by 카오 | 2009/04/27 20:30 | 일상 | 트랙백 | 덧글(0)

릴랙스 릴랙스

지난 6일 첫 수업이 있었다.

4교시에 과학영어연습이란 과목에 출석했다. Syllabus에 수업의 목적이과학영어나라(직역)에서 살아남기라고 써져있었지만, 강사인 Mark Vagins氏가 의도한 실제 취지는 그와 달랐다. 커뮤니케이션수단으로서 영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언제 어디서든지 써먹을 수 있도록 익숙해지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한 덕목(?)이 두가지 있었는데, 첫번째가 Fun, 두번째가 Relax였다.

180후반으로 보이는 커다란 키에 불뚝나온 배, 덥수룩한 수염에 알로하 셔츠를 입은 그의 얼굴은 한순간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존재자체가 Fun and Relax를 주장하는 느낌이랄까.

수업 초반에 YouTube에 접속해서 U2의 Vertigo MV를 보여주고, 여러분은 이 수업을 통해서 락스타가 되야된다는 이 털털한 털보아저씨.

자, 그럼 우리 이학계연구과 대학원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역시나 동경대, 집중력만큼은 최고다. 성실함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겠지. 끝내주는 집중력이다.

미간에 힘을 주고 강사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려 하지 않는자세, 정숙한 분위기 속에 옆사람과의 잡담 한마디 들리지 않는다.

팔장을 끼고 엄청난 난문에 봉착한 자세로 수업에 임하는 남학생, 곧은 자세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응시하는 여학생...

가장 대박은 Fun, Relax를 필기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아니, 훨씬 예전부터 지각하고 있었지만 이 날 일 덕분에 다시금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일본 국립대학의 자연계열로 진학함으로 인해 그동안 스토아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보아왔다.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삶을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들은 소극적이고 자신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나로서는 많은 쾌락을 뒤로하고 면학에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을 희생하는 그들을 한편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기 첫 영어수업에서 내가 지켜본 이 광경은...

만약 이번 학기가 끝날 때까지 나를 비롯하여 이 수업을 듣는 수강생 모두가 진정한 의미의 Fun, Relax를 배울 수 있다면, 나는 감히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겠다.

Richard Feynman playing bongos

by 카오 | 2009/04/08 21:09 | 일상 | 트랙백 | 덧글(8)

2009년 3월 CERN 방문

3/7
 새벽 6시, 휴대폰 알람에 잠에서 깨어나니 주위가 온통 밝았다. 어제 3벽 3시까지 旬家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와 불도 끄지 않고 그대로 잠들어 버린 것이다. 관서공항에서 9시 50분 비행기를 타려면 적어도 호타루가이케에서 7시 출발 공항버스를 타야했다. 그러나 전날까지 거의 여행채비를 해 놓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7시에 집을 나와서 겨우겨우 7시 반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마음은 급했다. 엔을 스위스 프랑으로 바꿀 겨를도 없이 JAL 창구에서 체크인을 마쳤다. 게이트로 이동하면서 이시바시의 바에서 자주 보는 남자를 보았다. 그다지 좋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말을 건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쳤다.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Rockin' Chair 에서 일하던 시절 가끔 오던 男色놈이 내 바로 앞 왼쪽 좌석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오늘 무슨 날인가 하는 생각이 다 들었다.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 잠간 눈이 마주쳤으나 서로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런던 Heathrow 공항에서는 당연하지만 주위가 온통 British English였다. 이렇게가지 가까이에서 영국인들의 억양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신선했다. Geneve행 비행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다가 공항 여직원이 동료에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Shut up'이라고 하는데 묘하게 섹시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영국식 억양의 매력인가.

 Heathrow에서 Geneve까지는 British Airlines를 이용했다. BA의 기내는 JAL의 조용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앞 좌석에서는 영국 청년들이 맥주를 마시며 앉았다 일어났다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고, 전체적으로도 가벼운 대화를 하는 승객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Geneve에 도착하니 지금가지의 긴 여정 중에는 없었던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도 모르고, 스위스 프랑에 대한 금전감각도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 5일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진짜 아무 대책없이 왔구나 하는 실소(失笑)가 다 나왔다. 사실은 공항에서 CERN까지 이동하는 것이 첫날 여정에서는 가장 큰 과제였지만 말이다. 일단 버스타는 것은 포기하고 택시를 잡았지만, 영어를 못하는 기사분이셨기에 전혀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수 없었다. 목적지인 CERN의 글자를 보여주고 나서야 겨우 통할 수 있었다. 이동 중에는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호스텔이 갑자기 떠올라서 별별 상상을 다 했다.

 CERN 입구에 도착할 때가지 주고받은 말이 "Only French?", "Yes."를 포함해서 다섯마디 밖에 안 되었다. 그 중에서 세 마디는 못 알아들었다. 결국 마지막에 내가 아는 유일한 프랑스어인 'Merci'가 통하기는 했지만, 이 일 때문에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렇게 우여곡절해서 CERN內의 숙사까지 도착하고, 앞으로의 일정동안 신세지게 될 쿠로다씨와도 인사했다. 이번 CERN 방문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기대가 크다. 낮에는 시설견학을 하고 프로젝트의에 대한 개관까지 설명을 들을 예정이기 때문에 시차로 인한 영향은 무시하고 잠을 청한다.

3/8 맑음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났지만, 전날 일기를 쓰고 있으니 시간이 훌쩍가서 금새 쿠로다씨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전날 샤워를 하고 잤더니 머리가 심하게 헝클어져 있었지만, 시계를 봤을 때는 이미 다시 머리를 감기에는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자를 집어들었다.

Bldg501 1층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소변을 보려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앗다. 밤에 목이 말라도 자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여러 시설의 위치를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화장실은 지하에 있었다.)

 9시 반 경에 쿠로다씨와 만나서 AD(감속기)가 있는 Bldg193을 둘러보면서 ASACUSA 프로젝트와 시설에 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그 중 한 실험의 최종목표는 반수소의 생성, 포착, 자기모멘트 및 분광스펙트럼 측정이었다. 수소에 대해서는 상당히 높은 정밀도의 측정결과가 축적되어 있으므로, 반물질인 반수소에 대해서 오차 10의 -6승 이하이 정밀도로 측정할 수 있다면 CPT대칭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력에 대한 화제도 나왔다. 만약 반수소가 중력에 대해서 종래의 입자와는 다른 반응을 보일 경우 (예를 들어 중력반대방향의 힘을 받을 경우) 물리학계에는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하나, 아직까지는 그 전 단계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에 공론화 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했다.

by 카오 | 2009/03/07 22:43 | 일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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