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행 신칸센

新幹線 노조미 150호 2호차량 6A석, 벌써 3시간 이상 시즈오카역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과업으로' 마음 속으로 농담 한마디 툭 던져 보고는 피식 웃는 얼굴이 어두운 창문에 비친다.

오후 6시 반에 신오사카에서 열차에 탑승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세 시간 후에 동경역 개찰구를 나와 선배의 하숙집으로 터덜터덜 향하고 있을 예정이었다. 현재시각은 자정, 머피의 법칙이라도 증명할 기세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여전히 파죽지세다.

값도 별로 차이 나지 않는데 항공편을 이용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지만, 후회가 되지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 수백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고립시킨 - 이 작은 이벤트에 어떡 익살스러운 감정조차 느끼는 것 같았다.

8번쩌 생일을 맞이하던 해부터 15년을 시험과 같이 살아왔는데, 내일은 또 그놈의 시험이다. 어쩌면 가까운 장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는 시험, 이렇게 애써 객관적인 조명으로 긴장감을 조성해보려 하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듯싶다. 이것이 나의 천성은 아닐진데, 언제부터 이렇게 느긋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가능하기만 하다면 계속 이런 자세로 살고싶다.

맥스웰 방정식은 정말 아름답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고의 틀 안에서 모순없이 귀결되는 통쾌함이란, 그것을 대학원 진학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 나의 속세적인 생각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고 만다. 한편, 인생은 카오스이론의 비선형 방정식에 더 가까운 것이 확실하다. 이런 비유를 쓰는 것조차 조용히 혐오했던 나의 문체가 변해버리는 것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을테니.

오랜 적막을 깨고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유리창에 부딪힌 빗방울은 잘게 쪼개지고, 내 생각들도 잘게 부숴진다. 지금까지 몇번인가 고통스러워 했던 나날들이 아득한 기억속에 스러지지만, 그 단편들이 오늘을 즐겁게 살아갈 수 방법들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자기발전이란 명목하에 언제나 타인과 자신을 대조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나. 쓰고 싶을 때 쓰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 싶을 때 그리지 못하게 하고, 부르고 싶을 때 부르지 못하게 하고, 말하고 싶을 때 말하지 못하게 했던 것은 전부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방정식 앞에서, 도전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주저 앉기만 했었던 나. 이제 다시 그 안에 뛰어들어 나만의 근사치를 얻을 수 있을까. 답은 없다는 것이 답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다만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의 과정이라면, 늙어서는 그 모든 것을 관조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철학자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by 카오 | 2008/08/25 08:1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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